조직 개편의 배경과 전말
인간기술센터(Center for Humane Technology, 이하 CHT)가 지난주 이사회 발표를 통해 비창업자 직원 16명 중 9명을 해고하고 정책 연구·소송 지원·AI 도구 평가 기능 전면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해고 대상에는 줄리 기라도(Julie Guirado) 전무이사와 카밀 칼튼(Camille Carlton) 전략 수석디렉터 등 핵심 경영진이 포함됐습니다. 이사회 의장 프레말 샤(Premal Shah)는 와이어드(WIRED) 인터뷰에서 “가속화되는 AI 위험의 순간에 하나의 전략에 집중해야 한다”며 “우리가 가장 잘해온 것에 집중해 이 순간에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결정은 역설적으로 CHT가 소셜미디어 기업 상대 소송에서 연승을 거둔 직후 내려졌습니다. 플랫폼이 아동을 의도적으로 화면에 붙들어두도록 설계됐다는 CHT 연구를 근거로 한 법정 승리였습니다. 하지만 16명의 전직 직원 증언에 따르면 수년간 조직 방향성을 둘러싼 내부 논쟁이 이어져 왔습니다.
트리스탄 해리스와 CHT의 궤적
CHT는 2017년 트리스탄 해리스(전 구글 프로덕트 매니저), 아자 라스킨(Aza Raskin, 무한 스크롤 발명자), 랜디 페르난도(Randy Fernando, 전 엔비디아 개발자 교육 담당)가 공동 설립했습니다. 초기 목표는 기술 기업이 제품의 사회적 결과에 책임을 지도록 압박하는 것이었습니다. 정치적 양극화 조장, 청소년 정신건강 해악 등이 초기 의제였습니다.
해리스가 사용한 언어는 실리콘밸리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됐습니다. 메타(Meta) 내부 문서에 따르면 2018년 초 이미 연구진이 해리스에게 접촉을 시도했으며, 앱이 의도적으로 중독성을 갖도록 설계됐다는 그의 경고가 주류 담론이 됐음을 보여줍니다. 2020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The Social Dilemma)' 공개 후 해리스의 전국적 인지도는 급상승했습니다. 다른 비영리 단체 리더는 “기술 책임성(tech accountability) 분야를 여는 데 소셜 딜레마만큼 도움이 된 것은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창업자 주도' 전략의 실체와 내부 갈등
이사회가 발표한 새 방향은 '공공 교육, 표적 브리핑, 비공개 조정(private coordination)' 세 축입니다. 해리스와 라스킨이 전면에 나서 대중 강연, 미디어 출연, 의회·기업 임원 비공개 미팅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입니다. 샤 의장은 “해리스는 정치적 스펙트럼을 아우르는 대중 매체 청중과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세계 극소수 인사 중 한 명”이라며 '그래스톱스(grasstops, 핵심 오피니언 리더 대상)' 전략을 옹호했습니다.
그러나 전직 직원들은 조직 문화가 '불필요하게 분주하고(frenetic) 광기를 유발한다(insanity-inducing)'고 증언합니다. 해리스의 잦은 변덕(shifting whims)에 맞춰 우선순위가 수시로 바뀌었고, '해리스가 세상에 발언하기 위한 차량(a vehicle for him to speak to the world)'이라는 인식이 팽배했습니다.
실제로 CHT가 개발해 수천 명이 수강한 '인간적 시스템 구축' 온라인 강좌는 해리스의 관심이 AI로 이동하자 폐지됐습니다. 교사 대상 스크린타임 교육 자료 개발도 중단됐습니다. 초기 자문위원 게일 반스(Gail Barnes)는 “해리스의 명성을 '지속 가능한 압력(durable pressure)'으로 전환해 기업 내부 변화를 이끌려던 작업을 이사회가 포기했다”고 비판했습니다.
“AI의 구속 제약이 여전히 '사람들이 논리를 듣지 못했다'인지, '논리에 기관의 이빨이 없다'인지에 따라 지혜인지 후퇴인지 갈린다. CHT는 전자를 택했다.” — 게일 반스, 전 CHT 자문위원
AI 위험론과 정책 영향력의 재편
최근 2년간 해리스는 'AI 장악(AI takeover)'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의 선봉에 섰습니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너무 늦는다”며 NBC 뉴스에서 강조했고, AI 개발 일시정지 청원을 주도했으며, 챗봇 위험성 의회 청문회 조직을 도왔습니다. 오픈AI(OpenAI) 상대 소송 — 챗GPT 상호작용 후 자살한 10대 부모가 제기한 사건 — 에도 자문 역할을 했습니다. 지난달 넷플릭스 공개 다큐멘터리 'The AI Doc'에도 출연해 의회 개입을 촉구했습니다.
이러한 대중 캠페인은 사이버 공격에 AI 에이전트가 활용된 사례가 드러나며 기술 개발자 책임론이 확산되는 시점과 맞물립니다. CHT는 연간 약 600만 달러 예산과 비슷한 규모 준비금을 부유한 가문과 재단 후원으로 운영해왔습니다.
비영리 단체의 딜레마: 임팩트 vs 생존
CHT의 선택은 기술 비영리 섹터가 직면한 구조적 긴장을 드러냅니다. '대중 인지도 → 여론 압력 → 정책 변화'라는 이론적 경로는 매력적이지만, '기관의 이빨(institutional teeth)' — 입법 초안 작성, 소송 지원, 기술 표준 수립, 규제 기관 역량 강화 — 이 없으면 공허해질 수 있습니다.
전직 직원들은 민주주의와 시민 자유에 대한 AI의 시급한 영향 — 알고리즘적 차별, 감시, 노동 대체, 허위정보 확산 — 이 존재론적 'AI 장악' 시나리오에 가려질 것을 우려합니다. 자금 경쟁이 치열한 비영리 생태계에서 '스타 창업자' 브랜드에 의존하는 모델은 단기 생존엔 유리하나 장기적 제도 구축엔 취약할 수 있습니다.
시사점과 향후 전망
CHT의 조직 개편은 AI 안전 담론의 주도권이 '기술적 정합성'에서 '서사 장악'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해리스·라스킨 듀오의 미디어 파워는 부정할 수 없지만, 정책 연구 역량 해체가 입법·규제 현장에서 실질적 변화를 이끌 '기술적 탄약'을 자진 반납한 것인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비공개 조정'이 구체적 입법·규제 성과로 연결되는지. 둘째, 해고된 정책·소송 인력이 다른 단체로 이동해 '기관의 이빨' 역할을 이어받을지. 셋째, CHT의 후원자들이 대중 캠페인 지표(조회수, 청원 서명) 외에 구조적 변화 지표(법안 통과, 판례 형성, 표준 채택)를 요구하기 시작할지입니다.
기술 거버넌스 영역에서 '목소리'와 '지렛대'는 다릅니다. CHT는 목소리를 키우는 쪽을 택했습니다. 지렛대를 누가 쥐게 될지가 다음 장의 주제입니다.